[오마이뉴스 한림랩 뉴스룸] 잃어버린 세계무역기구 30년을 찾아서
  • 등록일 :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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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계무역기구 30년을 찾아서

새로운 '룰 메이커', '트럼프 라운드(TR)'를 기대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게임'은 마치 1930년 허버트 후버 대통령 시절 제정된 관세법, '스무트-홀리법안(Smoot-Hawley Tariff Act)'을 연상케한다. 상원의원(Reed Smoot)과 윌리스 홀리 하원의원(Willis C. Hawley)이 주도했으며, 당시 2만여 개 수입품에 대해 '평균 59%'의 고율관세를 부과하여 미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결과는 기대와는 달리, 세계 각국의 보복관세와 무역전쟁을 불러와 오히려 1929년 발생한 세계대공황을 심화시켰다. 미국의 수출이 급감하고 실업률이 급증하는 등 경제적 타격은 심각했으며, 이후 경제사에서 보호무역 정책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새로운 '글로벌무역기구(GTO) '트럼프 라운드(TR)'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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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레짐(GTO) ‘트럼프 라운드(TR)’의 탄생 “잃어가고 있는 WTO 시스템의 정체성을 극복하고, 글로벌 ‘무역 재난’에서 벗어나는 ‘제3의 길(GTO)’을 개척해야 할 때이다. 새로운 ‘규범 지킴이(Rule Maker)’ ‘트럼프라운드(TR)’를 기대한다.” ⓒ ⓒ @ Perplexity AI 생성 이미지



스무트-홀리법안의 악몽을 되살리듯, 오늘날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주의(전쟁)는 세계 교역 질서를 뒤흔들며 WTO 레짐의 실질적 무력화를 초래했다. 특히 '잃어버린 WTO 30년'이라는 표현은 상징적이다. 다자주의(규범)가 힘을 잃고, 각국이 다시금 패권 경쟁의 논리 속에서 무역을 전략 자산화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뒤에서 자세히 설명할 '패권안전이론'이다. 군사적 패권의 안정이 경제적 교역 확장으로 이어진다는 논리처럼, 글로벌 무역 역시 강대국 간 일정한 신뢰와 규칙이 보장될 때 지속 가능하다. 이는 곧 1986년 시작해 1993년 타결로 이끈 '우루과이 라운드(UR)'의 교훈을 상기시킨다. 당시 국제사회는 GATT를 넘어 WTO라는 제도적 전환을 이끌어내며 세계무역의 황금기를 열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다른 도약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글로벌무역기구(GTO)'를 구상하고, 이를 실현할 '트럼프 라운드(TR)'를 제안하는 바이다. 갈라진 세계를 다시 규범으로 묶어낼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WTO 중심의 자유주의 질서가 붕괴될 것이라는 염려마저


'트럼프 관세전쟁'은 국제무역 적자를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며, 마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추진한 특단의 정책적 조치로 볼 수 있다. 대미 무역적자를 기록하는 국가들에 대해 기본 10% 관세를 부과하고, 적자 규모가 클 경우 추가로 11~50% 수준의 보복성 관세를 적용하는 '상호주의적' 체계로 구상됐다. 주요 대상은 중국, 인도, 유럽연합 등이며, 철강·알루미늄·자동차와 같은 전략산업에는 별도로 50% 관세가 유지된다.


학계와 정책 분석가들은 이 조치를 1930년대 스무트-홀리법안 이후 최대의 보호무역 전환으로 평가하며, WTO 중심의 자유주의 질서가 붕괴될 것이라는 염려마저 낳고 있다. 또한 세계 교역 갈등을 증폭시키고 미국 내 소비자 및 기업의 비용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일부 연방법원은 이 조치의 법적 근거에 의문을 제기했으나, 소송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실제 집행은 중단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제조업 기반강화', 국가안보는 물론 '경제안보' 확보, '무역불균형 해소'에 기여한다고 주장하나, 대다수 경제 전문가는 부정적 전망을 견지하고 있다.


최혜국대우(MFN) 및 무차별원칙은 왜 힘쓰지 못하는가?


최근 특히 미국의 보복성 관세 정책을 통한 국가·산업(기업) 경쟁력 제고라는 예상밖의 무역 갈등에 휘말려 최혜국대우(MFN: Most Favored Nation) 및 '무차별원칙'은 사실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미·일 마찰'이나 '미·중 갈등' 과정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미통상법 슈퍼301조(불공정무역 대응) 및 제232조(안보상 이유) 등이 사실상 부활한 것이 그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무역확장법(Trade Expansion Act 1962)과 무역법(Trade Act of 1974) 등 '자국 우선주의' 법제를 활용해 품목별 차등조치가 가능하다는 인식하에 행동하고 있다. 이는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에서 특정국의 이익 침해와 함께 국제무역 규범의 실효성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반도체 등 전략산업에서 차등적 관세부과 및 미국 내 생산유인 등으로 인해 MFN 원칙의 불안정성이 가속화되고 있다. '국가안보' 혹은 '경제안보' 전략이라는 명분 아래 탈세계화 정책이 탄력을 받으면서, 세계무역기구(WTO)의 구속력은 급격히 위축되었고 이제는 '존재감 제로'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국제레짐의 기능부전(機能不全)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을까.


'국제레짐(제도)' 약화 vs. '패권안정이론(G1 vs. G2 vs. P1)' 퇴장?


세계는 지금 국제레짐(제도)의 대표격인 WTO의 분쟁해결절차(DSP)가 신뢰도가 하락하고, 그 실행력(제도의 효용)은 저하하는 위기(리스크)에 처해 있다. 게다가 사실상 '자유무역'을 주도해 온 미국의 권력 및 의지가 쇠퇴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글로벌 '무역 재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다면 'WTO 30년 기능마비'를 초래한 배경(작동원리)은 무엇일까?


첫째, WTO 분쟁해결기구(DSU)의 신뢰도 하락과 실행력 약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즉, 국제무역레짐(=체계=제도=시스템)이 재난(위기)에 빠져 그 한계가 노출된 결과이다. 여기서 국제레짐(제도)이란 다자간 합의와 규범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협력과 질서를 유지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WTO는 분쟁해결절차의 진화를 통해 무역질서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1995년에 설립되어 큰 기대를 모았으나, 성인식이 훌쩍 지난 30년 동안 거의 '개점휴업'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 등 WTO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국제레짐의 복원을 위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국제레짐(제도)'의 취약성에 관한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패권안정이론 관점에서도 WTO의 존재감이 왜 사라져 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둘째, 글로벌 무역질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미국(G1)이 최혜국대우(MFN) 및 무차별원칙을 준수하려는 경제적 권력과 실행 의지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국제관계 및 국제정치경제학 관점에서 '패권안정이론(Hegemonic Stability Theory)'으로 설명하자면, 하나의 강대(패권)국인 미국이 국제체제를 지배하고 리더십을 행사할 때 무역질서가 안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제규범과 규칙을 설정하고 공공재를 제공하며, 힘의 우위로 다자간 협력을 조율해 자유무역과 평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할 행위자(헤게모니 국가)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패권국이 부재(쇠퇴)하거나 자유무역 수호 의지가 쇠약해지면, 국제체제는 불안정해지고 분쟁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경고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외교통상 정책의 전개가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다자간 규범에 기반한 국제레짐과 패권(힘)의 논리가 충돌하는 속에서 패권국 미국의 정책선택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국제레짐의 분쟁해결절차에 의존해 왔던 무역분쟁(마찰) 상대국들이 자의든 타의든 정글의 법칙, '트럼프 관세게임'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현재 세계경제는 특정 국가의 패권적 지위, 나아가 한 지도자(Player One, P1)의 정치적 아이덴티티와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우되는 불확실한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국제무역의 안정적 운영과 신뢰 구축이라는 WTO의 본래 역할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기존 다자주의 협력체계의 재구조화(Rescaling)가 시급함을 극명하게 반영한다.

'패권안전이론'을 도입하자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G2(미중) 체제의 현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시장지배 원리를 고수하며, '무역자유화'와 '관세 제로'라는 보편적 원칙을 무시한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처럼 한 명의 지도자(P1)의 독단적 결정이 세계교역질서를 좌우하는 현상을 예방·대비·대책·복구하려면 '리스크 매니지먼트(RM)' 혹은 '안전관리(SM)'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패권'안전'이론(Hegemonic Security-Stability Theory)이란 국제무역질서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강력한 패권국의 존재와 역할이 필수적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다른 국가와 협력해 국제규범을 설계·운영하고 다자 협력을 조율하며 공공재를 제공할 때 자유무역과 글로벌 연대가 원활해지고 분쟁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라는 가설이 실현될 수 있도록 조정 혹은 관리해야 한다.

포스트 WTO 시스템을 당장 시작하자

예컨대, 미국이 주도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와 WTO 창설은 안정적 무역환경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 반면 미국이 '자유무역원칙'에서 벗어나 '자국 우선주의' 무역정책을 고수하거나 중국과의 양강(G2) 현실을 외면할 경우, 긴장과 분쟁 위험이 커져 글로벌경제에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이미 일부 지도자의 독단적 결정은 국제교역의 예측가능성과 신뢰를 훼손하며 '무역 리스크'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를 관리하는 것이 '패권안전이론'의 핵심 과제이다.

새로운 '룰 메이커' '트럼프 라운드(TR)'를 기대한다

글로벌 무역질서가 불확실성과 분열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지금, '안전이론'이 경고하는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먼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국제규범을 외면하는 상황을 방관하면 '회복(복구)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뿐이다. 패권국이든 중견국이든 위험을 무릅쓰고 국제규범의 부흥과 다자협력 재건에 나서는 결단이 절실하다. 내친김에 'WTO의 제기능 복원'이나 새로운 '글로벌무역기구(GTO)'의 창설에 미국이 스스로 정책전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겠다.

'안전' 이론이 실효를 거두려면 패권국의 지속적 리더십과 규범 준수, 이해당사국 간 '위험분담(Risk Sharing)' 체계가 필수적이다. WTO 회원국들은 현재의 '레짐(규범)'을 강화하거나, 안정적 무역(공급망) 네트워크 구축에 적극 참여해 국제질서의 균형과 '안전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현실적인 개혁의 한계를 감안하여, "한국이 국제무역 규범의 '게임 체인저'로 나서서, 새로운 '글로벌무역기구(GTO: Global Trade Organization)' 구축을 위한 선도적 역할을 제안한다." 이러한 노력이 국제무역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한국 등 중견국들이 적극적으로 국제무역 시스템(규범)의 '게임 체인저'로 나서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파인(https://www.mediafine.co.kr)에도 실립니다.글쓴이 김영근은 도쿄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박사학위(국제관계학 전공)를 취득하고, 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로 있으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명정치와 인간의 안전보장’ 등의 논문을 썼으며, 『포스트 제국주의』(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II: 경제』(공저),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편저), 『생명과학기술과 정치』(공저) 등의 저서와 『한일 경제협력자금 100억 달러의 비밀』, 『3·11 동일본대지진을 새로이 검증하다』, 『일본 원자력 정책의 실패』 등의 역서가 있다.
주된 관심분야는 글로벌 위기관리 및 재난·안전학, 일본의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국제기구론, 국경학 등이다. 미국 예일대학 국제지역연구센터(YCIAS) 파견연구원, 일본 도쿄대학 특임교수, 학습원대학 객원연구원, 간사이대학 사회안전연구센터 초빙연구원,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국제정치경제학부 협력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연구센터 연구위원, 무역투자연구원(ITI) 무역정책실 연구실장, 계명대학교 국제대학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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